평양 개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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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개선문 | |
1. 개요 [편집]
2. 상세 [편집]
1982년 4월 14일에 김일성의 독립운동 업적을 주민들에게 선전하고 평양 입성 후 개선연설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김일성경기장 옆에 세운 기념물이다. 화강석으로 축조되었으며 건물의 남쪽 기둥에 '1925'와 '1945'라는 숫자가 새겨져 있다. '1925'는 '김일성이 조국 독립을 위해 고향집을 떠난 해', '1945'는 '조국이 독립한 해'를 각각 의미한다. 북쪽 면에 있는 부각상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는 개선연설을 하는 김일성에게 환호하는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남쪽 면에 있는 부각상 '장군님을 우러러', '새 조국 건설에로'는 김일성이 제시한 건당, 건국, 건군 노선에 따라 새 조국 건설에 앞장서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건설한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투알 개선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3. 남북통일 후 전망 [편집]
원래 이 건축물이 김일성을 위해 사실이 아닌 허위정보를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 상징적인 의미도 큰 것은 아니라 그냥 철거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다만, 만일 통일이 된 후라면 그 문을 통해 국군이 개선 의식을 한 후, 기존 체제를 의미하는 문구들과 부각상을 전부 제거하여 리모델링만 한 후 "통일문" 또는 "자유문"으로 개명하고 그 자리에 남길 수 있다. 이유인즉슨 대한민국 체제경쟁의 승리의 의미가 상당히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국군이 여기서 승리 행진을 하며 통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예로 사용된 것이 프랑스의 에투알 개선문인데, 1940년 독일군은 프랑스 점령기념으로 이 에투알 개선문을 통과했고, 당시 그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그것은 불황속에서 홀로 전쟁피해를 복구하고 고도성장하던 독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구체화된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평양 개선문이 워낙 거대해 철거비용도 만만치 않고, 랜드마크나 관광지, 전망대로서의 가치도 있다.그리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처럼 되겠지.
예를 들어 개선문 중 가장 유명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세웠는데, 나폴레옹 정권은 나폴레옹 전쟁 끝에 망했고, 이후 유럽의 판세는 나폴레옹 집권 이전으로 리셋되다시피 하며 나폴레옹의 제정을 흑역사화했지만 그렇다고 그 거대한 개선문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관광지로 잘 써먹는 중.
하지만 나폴레옹은 어느정도 내부 지지가 있었다지만, 통일 한국은 김일성에 적대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많기에,[1] 살려 놓더라도 상당기간 고생하는 건 불가피할 것 같다. 특히 극우단체의 테러는 예정된 수순일 것이다.
다만, 만일 통일이 된 후라면 그 문을 통해 국군이 개선 의식을 한 후, 기존 체제를 의미하는 문구들과 부각상을 전부 제거하여 리모델링만 한 후 "통일문" 또는 "자유문"으로 개명하고 그 자리에 남길 수 있다. 이유인즉슨 대한민국 체제경쟁의 승리의 의미가 상당히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한민국 국군이 여기서 승리 행진을 하며 통과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예로 사용된 것이 프랑스의 에투알 개선문인데, 1940년 독일군은 프랑스 점령기념으로 이 에투알 개선문을 통과했고, 당시 그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 충격을 안겨주었다. 또한 그것은 불황속에서 홀로 전쟁피해를 복구하고 고도성장하던 독일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구체화된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 평양 개선문이 워낙 거대해 철거비용도 만만치 않고, 랜드마크나 관광지, 전망대로서의 가치도 있다.
예를 들어 개선문 중 가장 유명한 파리의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세웠는데, 나폴레옹 정권은 나폴레옹 전쟁 끝에 망했고, 이후 유럽의 판세는 나폴레옹 집권 이전으로 리셋되다시피 하며 나폴레옹의 제정을 흑역사화했지만 그렇다고 그 거대한 개선문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관광지로 잘 써먹는 중.
하지만 나폴레옹은 어느정도 내부 지지가 있었다지만, 통일 한국은 김일성에 적대적인 감정을 지닌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훨씬 많기에,[1] 살려 놓더라도 상당기간 고생하는 건 불가피할 것 같다. 특히 극우단체의 테러는 예정된 수순일 것이다.
4. 관련 문서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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